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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총선, 13년만에 보수당 승리

딸기21 2010. 5. 7.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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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보수’ 데이비드 캐머런(44)의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6일 영국 총선에서 캐머런이 이끄는 보수당이 13년 만에 집권 노동당을 누르고 제1당이 됐다. 향후 정국의 열쇠를 쥔 제3당 자민당이 보수당 쪽으로 기울고 있어, 캐머런이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의 주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캐머런 “자민당과 포괄적 권력분점”

캐머런은 선거결과가 나온 7일 “노동당은 국가를 통치할 권한을 잃었다”며 “이번 선거는 변화와 새로운 리더십을 원하는 영국의 열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당은 과반은 확보하지 못했지만 ‘운명의 300석’을 넘김으로써 일단 총선 이후 정국을 이끌 주도권을 확보했다.
캐머런은 제3당인 자민당의 닉 클레그 당수를 향해 “포괄적이고 개방적이고 폭 넓은 권력분점 협상을 하고 싶다”며 연립정권 구성을 제안했다. 자민당과의 연정에 성공할 경우 두 정당의 의석 합계는 과반인 326석을 훨씬 웃도는 360석에 육박한다.

차기 총리 자리를 예약한 캐머런은 ‘보수당의 개혁’과 ‘따뜻한 보수주의’라는 기치를 내걸고 2005년 39세의 젊은 나이에 당수가 됐다. 젊고 참신한 이미지에 잘생긴 외모와 달변으로 젊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붙잡았다. 우파이면서도 분배 문제에 관심이 많고, 기후변화와 동성애 문제에서는 노동당보다도 개방적이라는 평이다.
노동당이 보수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데에 실패한 반면, 캐머런은 ‘보수당=우익정당’의 이미지를 털어내고 ‘새로운 보수, 젊은 보수’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유명 귀족학교인 이튼스쿨과 옥스퍼드대를 나온 전형적인 엘리트 출신으로 정치 경험이 적고 행정능력도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자민당과의 연정 협상은 캐머런의 첫 정치적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캐머런은 “금융시장의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안정된 정부를 빨리 구성할 필요가 있다”면서 자민당의 선거공약들을 상당부분 수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자민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현행 소선거구제를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자민당은 선거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도 보수·노동 양당에 유리한 선거법 때문에 손해를 봤다. 클레그는 “우리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선택이 선거결과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현행 선거제도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연정 협상 ‘첫 시험대’

캐머런이 ‘포괄적 권력 분점’을 거론한 것은 어떻게든 자민당을 설득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제1당이 과반 의석을 얻는 데에 실패한 것은 1974년 이래 처음이다. 이번 총선은 보수당에겐 의미 깊은 승리인 동시에, 절반의 승리에 불과하다.
협상 상대인 클레그 자민당 당수는 지난달 TV토론 때 경륜을 내세운 고든 브라운 현 총리와 캐머런을 누르고 정치스타로 급부상했다. 향후 협상에서 캐머런은 클레그를 설득하면서도 그에게 밀리지 않는 협상력과 기민한 판단력을 발휘해야 한다.
 
관행적으로 영국에서는 총선 다음날 1당 당수가 국왕(여왕)을 만나 정부구성 권한을 위임받는다. 개표 초반 “집권당인 우리에게 여전히 정부구성의 우선권이 있다”고 주장했던 노동당은 선거 결과에 승복하며 뒤로 물러섰다. 브라운 총리는 7일 오후 “캐머런과 클레그가 먼저 만나 협상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협상에 실패하면 클레그는 나와 대화를 나눠야 할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또 선거제도 개혁 국민투표를 제안하며 자민당에 연정의 미끼를 던졌다. 물론  노동당과 자민당의 의석수를 합해도 과반에 못 미치기 때문에 브라운이 재집권할 가능성은 낮다.
 
가디언 등 영국 언론들은 클레그가 이미 보수당 쪽으로 기울어 있다고 전했다. 클레그는 “보수당은 통치능력이 있음을 입증해 보여달라”고 말해 보수당과의 협상에 우선 주력할 것임을 시사했다. 캐머런과 클레그는 40대의 젊은 정치엘리트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개성 강한 두 사람이 연정 안에서 ‘화학적 결합’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보수당과 자민당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유럽연합(EU)에 대한 입장 등에서도 견해 차이가 크다.

만일 연정 협상이 결렬되면 캐머런은 보수당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재정적자 감축 등의 공약을 힘있게 추진하기 힘들어진다. 또 주요 법안들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매번 소수정당들을 설득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다.

정부구성의 법적 시한은 없지만 오는 25일 여왕의 개원 연설 전에 각 당이 연정 협상을 끝내려 애쓸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은 “연정 문제로 영국 정정불안이 장기화되면 가뜩이나 한파를 맞은 유럽경제가 계속 흔들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최대 승자는 자민당의 클레그

영국 총선에서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만큼이나 주목받고 있는 사람은 자유민주당의 닉 클레그(43) 당수입니다. 비록 보수·노동 양당에 유리한 선거제도 때문에 의석 수에서 손해를 봤지만, ‘정치적 승자’는 클레그랍니다.
사상 첫 주요정당 당수 간 TV토론이 펼쳐진 이번 선거에서 무명에 가깝던 클레그 당수는 말 그대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지난달 중순 TV토론회 뒤 여론조사에서 클레그 지지도는 무려 72%에 이르러 “윈스턴 처칠 이후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이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선거 결과는 기대엔 못 미쳤습니다. 자민당이 기존에 갖고 있던 62개의 의석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득표율에서는 노동당보다 6%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영국의 소선거구제 때문에 의석수에선 200석 가까이 벌어졌습니다.




자민당의 인기가 클레그 개인의 인기를 못 따라간 측면도 있고, 보수·노동당 지지층이 막판에 ‘중도’ 성격의 자민당 지지자들보다 훨씬 강력한 결집력을 보여준 탓도 있겠지요. 자민당은 ‘잉글랜드 통치’에 반감을 보여온 스코틀랜드 북부에서 선전했으나 고든 브라운 현 총리의 지지기반인 중부 지역에서는 노동당에 밀렸습니다. 남부는 보수당이 우위를 보이는 등, 이번 선거에서는 지역색이 강하게 드러났습니다. 클레그는 선거 뒤 유권자들과 만나 자민당 돌풍이 헛바람으로 그친 것에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레그는 캐스팅보트를 쥐고 두 거대 정당들의 구애를 받는 입장이 됐습니다. 당장 집권 노동당과 총선 제1당인 보수당 어느 쪽이 연정을 구성할 우선권을 갖고 있는지조차 모호한 상황에서, 클레그와 자민당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는지가 결정적 변수가 되고 있는 것이죠. 의석에서는 손해를 봤으나 정치적 영향력에서는 자민당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됐습니다.

클레그의 아버지 쪽은 사회주의 혁명 뒤 영국으로 넘어온 제정 러시아 귀족 가문이고, 어머니는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식민통치 관료 집안이라고 합니다. 다문화적인 환경에서 자란 클레그는 영어, 네덜란드어, 독일어, 불어, 스페인어 등 여러 언어에 능통하다네요. 캠브리지 대학에서 사회인류학을 전공하고 미국 미네소타대학에 유학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정통 ‘영국 엘리트’인 브라운이나 캐머런과 달리 기성 정치제도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았고, 귀족제도에도 회의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왔습니다. 중도보수 성향이면서도 분방하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젊은층에서 큰 인기랍니다. 일부 지지자들의 주장처럼 클레그가 ‘영국의 버락 오바마’가 될 수 있을지는, 총선 이후 국면을 어떻게 유리하게 끌어가 양당제의 벽을 깨뜨리고 자민당 몫을 챙길 수 있을지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노동당 '79년만의 참패'

“이제 노동당이 통치 권한을 잃었음이 분명해졌다.”
6일 총선에서 승리한 영국 보수당 데이비드 캐머런 당수의 말입니다.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 총리는 ‘관행’을 거론하며 현직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자민당과의 연정을 시도하려 하고 있지만 대세는 ‘노동당의 침몰’로 판명나고 있네요. 노동당과 자민당의 표를 모두 합쳐도 과반에 못 미치기 때문에 브라운은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에서 등 떼밀려 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데일리메일 등 영국언론들에 따르면 이번 선거결과는 노동당에는 79년만에 최악의 참패입니다. 보수당도 과반 의석을 점하진 못했지만 어쨌든 2005년 총선 때보다 100석 가까운 의석을 더 얻었습니다. 반면 노동당은 100석 가까이를 고스란히 잃었지요. 노동당 내에서 향후 브라운 총리와 선거총책임자였던 피터 만델슨 기업부장관 등 지도부 간 책임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브라운이 고향인 스코틀랜드에서 자민당 바람을 잠재우고 노동당 우위를 지킴으로써 일단 체면은 세웠지만, 당 내에선 브라운을 이참에 2선으로 후퇴시키고 데이비드 밀리반드 외무장관이 차세대 지도자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1997년 젊은 지도자 토니 블레어 총리를 얼굴 삼아, ‘제3의 길’ ‘신좌파’를 내세우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노동당은 13년만에 2당으로 내려앉았습니다. (그때 굉장했었죠! 오늘 아침, 오래도록 국제부에서 일하셨던 선배랑 얘기를 하다보니 그 기억이 새록새록.... 미국엔 클린턴, 영국엔 블레어, 프랑스엔 조스팽, 독일엔 슈뢰더... 젊고 매력적인- 프/독 지도자들은 '매력적'이라고 하기엔 좀 거시기했지만;; 암튼 지도자들이 뭔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것만 같았거든요.)

미국에서는 야당인 민주당이 2년전 대선에서 ‘변화’ 구호를 내걸고 승리했지만 영국에선 반대로 국민들의 변화 요구가 보수당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브라운의 노동당에 참패를 안긴 가장 큰 요인은 역시 ‘경제’였습니다.
브라운은 97년부터 10년 동안 재무장관을 지내며 ‘블레어노믹스’의 호황을 이끈 경제전문가였습니다. 하지만 ‘제3의 길’은 말 뿐이었고, 실제론 80년대~90년대 보수당 정권의 대처리즘을 답습했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럽의 금융중심지였던 영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브라운의 10년 공적은 빛을 잃었습니다. AP통신은 “브라운이 집권한 지난 3년 동안 영국이 최악의 경제침체에 빠졌고 130만명이 해고됐으며 수만명이 집을 잃었다”(그 대안으로 보수당을 택한 것이 옳은 선택인지는 논외이겠지만)고 지적했습니다.

‘푸들 외교’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던 노동당 정권의 대미 추종 외교도 비난을 샀습니다. 블레어 전총리는 이라크전에 끼어들면서 국민들을 속이고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관련정보를 왜곡·조작한 것으로 드러나 얼마전 청문회에 섰지요. 브라운 총리는 집권 뒤 아프간에서 영국군 사망자가 늘어나 궁지에 몰렸습니다.
두 총리를 거치는 동안 노동당은 국민과의 의사소통을 외면한 채 여론을 호도하거나 독단을 행사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보수당은 캐머런을 내세워 우익정당의 이미지를 떨궈낸 반면, 노동당은 보수당과 차별화된 내용을 선보이지 못했습니다.

노동당은 선거전략에서도 한계를 보였습니다. 에딘버러 대학 재학시절 ‘좌파 이론가’로 이름을 날렸던 브라운은 대중정치인으로서는 걸맞지 않는다는 평을 들어왔지요. 경쟁자인 보수당의 캐머런이 21세기에 걸맞는 ‘비디오형 지도자’인 반면, 브라운은 대중적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어쩜 그렇게 매력이 없는지... 남의 나라 정치인이지만, 찍히는 사진마다 어쩜 그렇게 비호감인지...그것도 참 재주예요). 이번 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도입된 TV토론 등 달라진 선거풍토에 적응장애를 일으켰고, 설상가상으로 오랜 지지자를 뒤에서 욕했던 사실까지 언론에 노출돼 설화를 빚었습니다. 결국은 가디언 같은 진보적인 언론들도 독선적이고 정책 특색도 없는 노동당에 등을 돌렸습니다.

영국 노동당을 보니, 한국의 '무늬만 야당'들에게도 반면교사가 될 것 같네요. 경제에선 대처리즘 답습, 정치에선 대미 추종에 대테러전 지지, 좌나 우나 차별성 없는 정책, 국민과의 소통 부족, 카리스마 없는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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