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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마사이족 마을에서

딸기21 2006. 12. 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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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보았던 소년잡지의 동물만화에는 마사이족이 곧잘 등장했다. 특유의 유선형 날이 달린 긴 창을 휘어잡고 사자를 좇는 마사이족은 야성의 상징이다. 케냐의 동서 고원을 가르고 있는 거대한 협곡은 마사이족의 땅이다. 개발의 길을 택한 다른 부족들이 나이로비와 뭄바사 같은 대도시에서 번잡한 현대인의 생활에 적응한 반면 마사이족들은 여전히 광활한 구릉과 협곡에서 유목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케냐 남쪽 탄자니아 접경지대 암보셀리의 마사이 마을을 찾아갔다. 이 마을에는 182명이 살고 있는데 모두 4개 집안 사람들이다. 소, 양, 염소, 당나귀 따위를 키우고 세공품을 관광객들에게 팔고 집 구경을 시켜주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마사이의 소들은 건조기후에 적응해, 신기하게도 낙타처럼 등에 혹이 달렸다. 


건기와 우기, 두 마을 오가며 사는 마사이 사람들

전형적인 마사이 마을에서 남자들은 울타리를 치고 여자들은 집을 짓는다. 하루 식사는 아침저녁 두 끼만. 우기와 건기에 맞춰 두 개 마을에 집을 지어놓고 연중 절반씩 거주하는데, 암보셀리에 지내는 동안 마사이족 아이들은 한국인 선교사가 지은 사마리아선교회 교회학교에서 영어를 배운다고 한다.

암보셀리 공원 안에 마사이 마을이 있는데, 
공원 입구에서 마사이족 소녀들이 목걸이랑 팔찌 따위를 들고 다니며 팔아요.

마사이 마을가는 길, 저렇게 돌로 된 표지판이 있어요

여기가 마사이마을이랍니다.


흙벽에 초가지붕을 얹은 마사이족 야곱의 집에는 2개의 침실이 있었다. 하나는 부모 방, 하나는 아이들 방이다. 전기도 없고 수도도 없는 캄캄한 집안에 손바닥만한 창이 나 있고, 소가죽 침상에서 야곱의 가장 젊은 아내가 목걸이 구슬을 꿰고 있었다.

사자들도 무서워한다는 마사이족

병원이 없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킬리만자로 숲의 약초에 의지해 살아간다. 중병에 걸려도 약초 뿐. 말라리아에는 에레미트라는 풀을 달여먹이고, 산모에게는 오르크콸라라는 것을 먹인다고 했다. 몇몇 남자들이 아카시아 나무와 백향목 줄기로 불을 피워 코끼리똥 말린 것에 불붙이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마을 구경의 마지막 순서인 마사이 장터에서는 여성들이 하루 종일 어두운 흙집에서 꿰어 만든 목걸이와 팔찌 같은 장신구들을 흙바닥에 늘어놓고 판다. 집집마다 여자들이 만든 물건들을 가마니 위에 `진열'해놓고 있지만 `자유시장'은 아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남자들 몇몇이 나서서 거간꾼이 되어 관광객들에게 강매하다시피 물건을 팔면 그 돈을 비교적 고르게 나누는 것 같았다. 

마사이마을까지 동행한 레인저(안내원) 딕은 키쿠유족인데 "지금도 사자들은 마사이를 만나면 도망을 친다"고 했다. 설마 싶겠지만 사자들도 마사이는 알아본다는 것이다. 마사이의 빨간 옷, 그들이 몸에 바르는 독특한 향료가 있어서 그런 모양이라고. 


마사이 사내아이들은 어른이 되려면 통과의례로 사자를 한 마리씩 잡아야 했다. 암사자는 안 되고, 숫사자만 의미가 있다. 그러니 동물의 왕 사자들에게 마사이족은 그야말로 천적이었던 셈이다. "사자들이 키쿠유족을 보면 도망 안 가나요?" "어림도 없지, 우린 당장 도망가야지." 딕은 "사자들은 오직 마사이족만 구분한다"고 했다. 


서양 식민세력들이 아프리카인들을 마구잡이로 `사냥'해가던 시절에도 노예화하지 못한 것이 마사이족이다. 노예상인들이 붙잡기만 하면 `죽거나 죽이거나' 둘중 하나를 택해 결국 끌고 가지 못했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어 마사이 전사들이 관광객들 앞에 문을 열어주고 춤을 보여주며 돈을 벌지만, 국경도 국적도 그들에겐 여전히 의미가 없다. 킬리만자로 일대 케냐와 탄자니아 국경은 군데군데 열려있는데, 동물들과 마사이족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철따라 그들은 자신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국경을 오간다.

마사이마을을 나와 다시 초원에 들어서니 톰슨가젤(영양의 일종)과 그란트가젤이 뛰어다녔다. 딕이 내게 물었다.

"저기 타조 있네. 검은 것은 숫놈, 회색은 암놈. 알아요?"

야생동물은커녕 참새도 사라진 아파트촌에서 사는 내게 그런 상식을 기대하다니요. 그날 하루 종일 딕에게서 `동물 수업'을 받았다. 치타 두 마리가 얼룩말 떼를 쫓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먼지구름이 시야를 가렸다.



저녁이 되자 멀리 구름 낀 산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킬리만자로! 눈 덮인 산 킬리만자로, 조용필의 노래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산에 로망을 갖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킬리만자로는 탄자니아 땅에 있지만 국경 아주 가까이 있어서 암보셀리에서도 자태를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철에는 낮 동안 내내 구름 모자를 쓰고 있다. 레인저(사파리 안내원) 딕이 "저녁이 되면 산 꼭대기가 보일 것"이라고 했는데, 거짓말처럼 낮 동안 하늘을 덮었던 뿌연 구름들이 걷히고 푸른 산이 보였다.

눈 녹고 있는 킬리만자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인 킬리만자로는 열대의 만년설로 유명하지만 지금은 그 눈마저도 지구온난화 때문에 녹고 있다고 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잡지나 다큐멘터리필름 속 모습보다 `눈 모자'는 확실히 작았다.


코끼리가족은 엄마가 맨 앞 아빠가 맨 뒤, 단란하게 다녀요.
생후 2주 된(딕의 말에 따르면) 아기코끼리도 보았어요. :)



어둑어둑해진 초원을 코끼리 가족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루 나들이를 마치고 킬리만자로 기슭으로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레인저 차량들은 모두 멈춰 코끼리 가족의 퇴근을 기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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