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잠보! 아프리카

가나에서 만난 '팔려간 아이들'

딸기21 2006. 5. 1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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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가나 중동부 볼타 호수 근방에 있는 아베이메 마을. 26일 마을 광장에서는 전통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대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흰 티셔츠를 맞춰 입은 어린아이들이 색색깔 고무 슬리퍼를 신고 나란히 앉아서 어른들의 춤을 지켜본다.


정오를 넘긴 시각, 햇살은 따갑고 아카시아 그늘에는 습기를 머금은 더운 바람이 오갔다. 아이들의 티셔츠에는 "어린이들을 자유롭게 하라(Free The Children, Let Them Go)"는 문구가 쓰여 있다. 국제이주기구(IOM) 재활센터에서 심리치료와 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들이다. 이제 대여섯 살 쯤 돼 보이는 작은 아이들도 있고, 열서너 살 먹었음직한 큰 아이들도 있다. 


이날은 IOM의 `예지(Yeji) 매매아동 구조프로젝트'에 따라 강제노동에서 벗어나게 된 아이들 39명이 두어 달 남짓한 재활센터 생활을 마치고 부모와 상봉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이 아이들은 아베이메가 위치한 예지 지역에서 볼타호수 어촌에 팔려가 고기잡이 노동을 했었다. 





가나 애들은 증말 이쁘다. 피부가 매끌매끌, 윤기가 나고 눈은 반짝반짝.


1960년대 기니만의 상아해안 일대에 개발 붐이 일자 어부들은 내륙호수인 볼타 주변으로 밀려올라와 어촌을 형성했다. 일손이 부족한 어민들은 시골 마을에서 아이들을 `사다가' 일을 시켰다. 


그렇게 팔려온 아이들은 교육도 받지 못한 채 힘겨운 노동을 하게 된다. 고사리 손으로 호수에 들어가 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이 아이들의 일이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노동에 시달린 어린 아이들은 유난히 체구가 작아, 제 나이보다 두어 살은 어려 보였다. 


가나에서 매매되는 아이들 상당수는 미혼모나 홀어머니를 두고 있다. 이 아이들의 빈곤은 아프리카에 아직도 남아있는 일부다처제와 높은 출산율 같은 구조적인 문제점들과 결합돼 있다. 부모들은 인신매매나 아동노동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타지로 보내면 고향집에서보다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도 갖고 있다. 


팔려간 아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더 나은 생활이 아닌 힘겨운 노동뿐이다. IOM에 따르면 예지에서 노동에 투입된 어린이들 상당수가 말라리아 같은 질병에 걸렸고, 비인간적인 처우 때문에 심리적 충격을 받은 상태다. IOM 가나 사무소의 조지프 리스폴리는 "아이들은 새벽 5시부터 고기잡이를 하러 나가는 힘겨운 생활을 해왔다"면서 "호수에서 고기를 잡다 익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빈곤이지만 부모의 무지와 지역사회의 인식부족도 아동매매·노동을 근절시키기 힘들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리스폴리는 이날의 가족 재결합 행사에서도 아이들을 만나러 온 부모들에게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가라, 가방과 샌들을 줄 테니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모들에게 양육 책임을 각인시키지 않으면 재결합 프로젝트는 구호에 끝나기 쉽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이의 상봉. “이젠 날 팔지 마세요”


이날 행사에서 아이들은 고달팠던 노동의 날들을 재현한 역할극을 선보이기도 했다. 행사의 하일라이트는 아이들이 하나씩 불리어나와 부모와 만나는 가족 상봉의 순간이었다. 가난과 무지 때문에 아이들을 떠나보냈던 부모들은 자식들을 얼싸안고 기뻐했다. 그러나 모두가 들떠보이지는 않았다. 오베디라는 이름의 여성은 이번 행사에서 손자손녀 넷을 한꺼번에 만났다. 오베디는 두 딸을 뒀는데 하나는 이웃한 코트디부아르의 아비잔으로 일하러 떠났고, 또 다른 딸은 가나에 남아 있다. 


돈을 받고 일터로 보냈던 아이들은 두 딸의 자식들이지만 이 아이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오베디도 알지 못한다. 상당수 부모들은 품에 돌아오게 된 자식들을 다시 가난만 남아있는 집으로 데려가야 하는 상황이 내키지 않는 듯했다. 3∼4년 만에 아이들을 만났다면서도 맘껏 기뻐할 수 없는 어른들의 지친 표정들, 혹은 부모와의 만남이 감격스럽지 않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을 피하는 어린이들의 얼굴에 `아프리카의 그늘'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잠시 구호요원인 양 폼 잡으며 잘난척하는 딸기의 모습;;


■ 예지 프로젝트란


국제이주기구(IOM)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3년 동안 미국 정부로부터 103만 달러(약 98억원)를 지원받아 가나 중부 볼타호수 근방 예지 지역에서 아동매매, 노동을 막기 위한 `예지 매매아동 구조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이 프로젝트는 볼타호수 어촌에 팔려가 노동에 동원된 어린이들을 빼내 가족에게 돌려보내주기 위한 것. 프로젝트는 부모들과 어민들 간 `거래'로 팔려간 아이들의 실태와 신원을 확인하는 조사단계, 어부들을 설득하고 지원책을 마련해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빼내는 구출 단계, 구조된 아이들의 치료·교육과 가족 재결합을 추진하는 재통합단계 등 크게 3단계로 이뤄진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첫 해, 처음 석 달 동안에만 매매된 아이들 1002명이 확인됐다. IOM은 아이들과 어부들의 사진을 찍어 부모들에게 보여주는 절차를 거쳐 이 아이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아이들을 빼내는 대가로 어부들에게 줄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했다. 프로젝트는 아이들을 구출해 학교에 보내는 일과 부모들을 위한 직업교육, 어부들을 위한 소액대출 등을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강제노동에 시달린 어린이들은 정신적으로 매우 큰 충격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곧바로 집에 보내는 대신 재활센터에서 공식 언어인 영어를 가르치고 심리치료를 한 뒤 돌려보낸다.


IOM은 또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 다시 매매되는 일을 막기 위한 모니터링 활동도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3년 동안 노역에서 구출된 아이들은 587명이고, 그 중 537명이 집으로 돌아가 학교에 다니고 있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돌아온 아이들이 사라지거나 다시 매매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가 나타나 부모와 별도로 후원자를 두는 멘터 제도를 병행해 실시하고 있다. IOM 아크라 사무소의 에릭 야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린아이들을 사고팔거나 노동을 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님을 부모들이 인식하는 것"이라면서 "예방 차원의 캠페인과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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