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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토고] 냐마지히의 축구소년들

딸기21 2005. 12. 2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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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낸 토고는 온통 축구열기로 가득차 있었다. 곳곳에 노란색과 초록색이 섞인 국가대표 축구팀을 파는 노점상들이 눈에 보였고, 거리의 빈터는 모두 축구장이었다.

13일(현지시간) 수도 로메시 외곽 헤지라나웨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밤늦게 도착해 마땅한 호텔을 찾지 못하고 현지 한국인 교회에 묵었다)를 나와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토고 최대 축구장인 케게 국립경기장이 보였다. 수용인원 3만명의 케게경기장은 지난 10월8일 토고 국가대표팀이 아프리카 지역 월드컵 예선 마지막 경기인 콩고전을 치른 곳이다. 콩고와의 경기가 있던 날, 헤지라나웨 일대는 경기장에서 들려오는 함성으로 온 마을들이 들썩거렸다고 한다. 

드문드문 나즈막한 집들이 있는 마을 한가운데에 덩그머니 경기장이 서있었다. 국가대표팀의 경기가 끝난 축구장은 지키는 사람도 없이 텅 비어있었다. 경기장에는 이 지역 특유의 붉은 흙이 깔린 트랙과 초록빛 그라운드의 대조가 눈이 부셨다.



로메 시내에 있는 케게 국립경기장


유럽의 명문 구단들이 갖고 있는 거대한 스타디움들을 본 이들이라면 이 작은 나라에서, 이런 시설에서 어떻게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는지 의아해할 것 같았다. 2000년 무역박람회가 열렸던 박람회장을 지나,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붉은 흙길이었다. 스포츠는 비즈니스이고 돈의 위력에 승패가 갈린다고 냉소하는 이들도 있지만, 케게 경기장은 꿈과 노력만으로도 승리를 일궈낼 수 있음을 입증해 보여주는 것 같았다.

시내 곳곳에는 국가대표팀의 사진을 등신대로 세워놓은 촬영장소와 유니폼을 파는 노점들이 있었고, 축구공을 들고 다니며 파는 행상도 눈에 띄었다. 저녁이 되어 선선한 바람이 불자 수도 로메 시내 곳곳의 빈터는 축구장으로 변했다. 바닷가의 운동장에는 빨간색, 파란색의 유니폼을 입은 소년들이 나와 있었다. 공을 차는 아이들 뒤로, 19세기 독일 식민통치 당국이 만들었다는 옛 부두 와르프의 흔적이 보였다.

토고인들에게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97년 경제위기를 맞았던 한국인들이 박세리 선수의 골프샷에 희망을 얻은 것처럼, 이들은 그라운드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전으로 피폐해진 라이베리아나 대기근을 겪고 있는 니제르 등 주변 아프리카국들과 비하면 정치적으로 안정돼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1960년 이후 토고의 역사는 아프리카 독재국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1967년 쿠데타로 집권한 에야데마 냐싱베 전대통령은 지난 1월 사망하기까지 38년간 세계 최장기집권자로 이 나라를 통치했다. 지난 4월의 대선에서는 아들인 포르 냐싱베 대통령이 권력을 물려받았다.

권력세습의 혐의가 짙기는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새 대통령의 점진적 개혁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이런 정치상황과 맞물려, 월드컵 본선진출이라는 빅 이벤트는 토고인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고 있는 듯했다.





냐마지히의 축구 소년들


토고 수도 로메 동쪽에 냐마지히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이 곳에는 한국 선교사들과 교민들이 지원해 세운 학교가 있다. 13일(현지시간) 한인회의 도움을 받아 냐마지히의 학교를 찾았다.

전 교황의 방문을 기념해 `요한바오로2세 거리'라 이름 붙은 지역을 지나 로메를 벗어나니 양 옆으로 사바나가 펼쳐졌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동안 차창 밖으로는 코코넛과 바오밥 나무들이 드문드문 서있는 초원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차를 타고 1시간을 달려 냐마지히에 도착했다. 초가집들이 예닐곱 가구씩 모여있는 촌락들 사이에 낮은 지붕의 단촐한 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단촐하다고는 하지만 학생이 230명에 이르는, 냐마지히의 유일한 학교다. 교사들은 모두 토고인들이고, 한국-아프리카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아브라함 아우씨 목사가 학교를 관리하고 있었다.

로메에서 가져온 축구공을 들고 고운 모래가 깔린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 어귀를 지나 빈터에 이를 무렵에는 까맣고 고운 피부에 눈이 큰 아이들 30여명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초가집 사이사이에 숨어있던 아이들은 취재진을 보자 "요보(흰둥이)"라고 부르며 우르르 몰려들었다. 공을 던져주자 기다렸다는 듯 경기 아닌 경기가 벌어진다.

아이들은 예뻤다. 너무 예뻐서, 까만 피부가 너무 보드라워보여서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혹시 낯설어하고 이상하게 여길까 싶어서 참았다. 






월드컵 출전을 꿈꾸며 벗은 발로 모래바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 그 중 한 아이, 카바라 코시 제롬(12)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더니 "축구선수"라는 대답이 바로 튀어나왔다. 카바라의 우상은 토고 국가대표팀의 주전 선수인 아데바요르 셰이. 아데바요르처럼 장차 프랑스의 축구팀에서 뛰고 싶은 것이 이 소년의 꿈이었다.



소년 카바라의 꿈은 아데바요르 같은 축구선수가 돼서 프랑스 리그에서 뛰는것이다.


집에 TV가 없어서 아데바요르 선수의 모습을 자주 볼 수는 없지만 어른들에게 설명을 들어서 익히 알고 있다고.카바라의 아버지는 염소와 닭을 치고 어머니는 돗자리를 짜면서 첫째인 카바라를 비롯한 다섯 자녀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카바라는 몹시 수줍어하면서도 "축구를 잘 하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위!(예)"라고 답했다. 

덤으로, 냐마지히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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