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테헤란의 애니메이션 바람

딸기21 2005. 5. 11. 17:02
728x90

혹자는 “태어난지 200년된 영화가 이란에 가서 젊어졌다”고 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계기로 영화의 새로운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는 이란. 그런데 최근에는 이란에서 대대적인 애니메이션 제작 바람이 불고 있다는 소식이다.


영국 BBC 방송은 10일 이란 국영방송을 필두로, 테헤란에 일고 있는 애니메이션 제작 붐을 소개했다.


현재 제작중인 애니메이션들은 이슬람 세계에서도 소수인 이란 쉬아파의 역사나 지난 1979년 호메이니 혁명을 담은 것들이 많다고. 등장인물은 대부분 터번을 쓰고 긴 옷을 입은 무슬림(이슬람신도)들이란다.

`순교자 바호나르'는 80년대 초반 폭탄테러로 암살된 전직 총리의 어린시절을 그리고 있다. `아슈리안'은 쉬아파가 주류에서 갈라져 나오게 만든 주인공인 예언자 무함마드(마호메트)의 사위 알리의 순교를 그린 애니메이션. `알 라시드의 후예들'은 알리바바 이야기에 등장하는 유명한 칼리프(왕) 하룬 알 라시드 이야기를 빗대어 이스라엘에 맞선 팔레스타인인들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국영방송사의 자회사인 사바 프로덕션에서 제작됐다는데, 소개글을 보면 정치적 의도가 빤히 비치는 것들인 모양이다.


자유주의 성향을 지닌 무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1980년대 문화부장관이었던 시절부터 영화진흥정책을 펼친 결과 키아로스타미처럼 신선한 시각을 지닌 이란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데 반해, 현재 제작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상당수가 근본주의 보수파들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호메이니 시절 `미국은 거대한 사탄'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던 이란이지만, 젊은이들이 엄격한 이슬람법과 문화에 등을 돌리면서 미국 등 서방문화가 야금야금 파고들어가고 있다고. 이에 경계심을 느낀 보수파들이 국영방송을 동원, 이슬람 신학과 역사를 담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란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모두 정치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온몸을 검은 차도르로 꽁꽁 싸맨 할머니와 머릿수건만 쓰고 얼굴을 드러낸 어린 손녀를 등장시켜 `세대차'를 드러낸다든가, 유명한 페르샤풍 정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들도 있다. 이런 작품들은 ‘앙팡 파탈’들이 쇼핑카트를 타고 달리며 가공할 적을 무찌르는 월트디즈니의 만화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그려보인다고.

애니메이션제작사 `라사네 파르드'를 운영하는 베루즈 야그마이안 감독은 페르샤의 신화와 민담에서 소재를 얻어온 작품들을 만들고 있는데, 그의 작품들은 벌써 상당수 터키 등지로 팔려나갔다고 한다.


내용은 철저히 이슬람적이고 그림은 페르샤풍이지만, 제작기법 면에서는 아직 월트디즈니나 일본을 따라가진 못한다. 하지만 이란 애니메이션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수천년 페르샤 역사가 남긴 풍부한 문화전통.

디즈니의 `알라딘'에 나오는 것 같은 `서양화된 아라비아'의 모습이 아니라, 옛날 세밀화에 나오는 것 같은 동방풍 페르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을 만들려는 시도들도 있다니 기대가 된다. 페르샤의 아름다운 색채가 애니로 만들어지면 얼마나 멋질까? 테헤란에서 열리는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http://www.tehran-animafest.ir)은 벌써 올해로 4회째를 맞고 있는데, 이란 애니메이션을 세계에 알리는 자리로 자리 잡았다고.


1908년 프랑스에서 ‘판타즈마고리’가 제작된뒤 100년. 애니메이션이 이란에 가서 젊어질 수 있을까. 잠재력은 충분해 보인다. 이란 애니메이션이 영화에 이어 세계무대에 떠오를 날이 곧 올지 주목된다고 BBC는 전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