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어제의 오늘/ 루시디 목에 현상금

딸기21 2010. 2. 2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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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배경은 인도와 영국과 아라비아의 어느 사막을 오간다. 공간적 배경 만큼이나 주인공들의 성격과 문화적 배경도 다양하다.
천사 지브릴(영어로는 가브리엘)을 상징하는 인도의 영화스타 지브릴, 반대로 자의와 상관 없이 악의 화신으로 변해가는 성우 살라딘. 지브릴은 서구적인 것, 인도적이지 않은 것을 경멸하지만 정작 그의 애인은 ‘히말라야의 만년설처럼 흰 피부를 지닌’ 알렐루야라는 이름의 유대인 여성이다. 반면 런던에서 주로 활동하는 살라딘은 인도 출신임을 한탄하며 오로지 영국, 런던만을 숭상하고 옛 식민종주국의 시민이 되기 위해 애쓴다.

또다른 주인공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7세기 메카와 메디나의 사막에 살았던 ‘예언자 마훈드’다. 개에 비유되기도 하는 이 마훈드라는 인물은 누가 봐도 한 눈에 이슬람의 창시자인 대예언자 무함마드를 지칭한다. 어처구니없게도, 무함마드에게 예언을 내려준 것은 알라의 천사 지브릴이 아닌, 현대의 볼리웃 스타 지브릴이었다.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 시간과 장소를 오가는 몽환적인 판타지 소설. 수다스럽고 유머 가득하고 뒤죽박죽에다가 때론 신성모독까지 서슴지 않는 이 책의 제목은 <악마의 시(The Satanic Verses)>다.

소설가 살만 루시디(62)는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문학 활동을 했다. 1981년에 발표한 소설 <한밤의 아이들>로 이미 명성을 얻었지만 그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것은 네번째 작품인 <악마의 시>였다. 영국에서 88년 발표된 이 소설은 그 해 부커상 최종후보에까지 올라갔다가 피터 카레이의 <오스카와 루신다>에 결국 영예를 빼앗겼지만 휘트브레드 상을 받아 설복했다.
하지만 이 책이 유명해진 것은 문학적으로 너무나 탁월해서가 아니라, 89년 2월 24일 이란의 최고종교지도자 아야툴라 루흘라 호메이니가 루시디의 목에 미화 300만달러 규모의 현상금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호메이니는 그 열흘 전 루시디를 살해하라는 파트와(이슬람 율법의 판례에 해당하는 포고령)를 내린데 이어 거액의 현상금까지 내걸고 이슬람권 전역에 루시디 살해를 선동했다.

영국에서는 무슬림 주민들이 이 책의 출간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고 파키스탄에서는 급기야 유혈 시위로 번졌다. 인도는 책 출간을 금지시켰다. 영국 정부는 루시디를 경찰력으로 보호해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자 89년 5월 이란은 영국과의 외교관계를 끊어버렸다. 루시디는 공개된 장소에 나서지 못한 채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91년에는 일본에서 <악마의 시>를 펴낸 번역자가 칼에 찔리는 공격을 당했다. 이탈리아 번역자 에토레 카프리올로도 같은 달 공격을 받았고, 노르웨이 출판업자 빌리암 니가르트는 93년 암살 공격에서 간신히 벗어났다. 터키에서는 책을 번역한 유명 작가 아지즈 네신을 노린 공격과 그 후폭풍으로 일어난 유혈사태로 37명이 숨졌다.

89년 6월 호메이니는 숨졌고, 이란에서는 개혁 바람이 불었다. 96년 이란 정부는 루시디 살해령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슬람 성법 상 파트와는 그것을 내린 사람에 의해서만 철회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란의 일부 보수파들은 루시디 살해령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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