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메리카vs아메리카

'N워드' 논란

딸기21 2010. 1. 1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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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탄생한지 1년이 돼가지만 미국 내 인종차별과 흑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사라지려면 훨씬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인사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피부색을 거론하며 ‘니그로’라는 비하적인 말을 쓴 사실이 드러났다. 정치적으로는 금기시되지만 여전히 백인들의 머리에 박혀 있는, 이른바 ‘N단어(N-word)’ 문제가 다시 물위로 떠오르고 있다.



문제 발언이 정치적 우군인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사진)의 입에서 나왔다는 게 더욱 논란을 부추긴다.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오바마가 민주당 당내 후보경선에 입후보하자 리드는 그를 가리켜 “피부색도 밝은 편이고 니그로 사투리도 안 쓰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오바마가 없는 사적인 자리에서 지지한다는 뜻으로 말한 거였지만 은연중에 ‘N단어’가 튀어나온 것이다. 


리드는 오바마 정부의 의료개혁안이 상원에서 통과되는 데 큰 몫을 한 유력 정치인이며,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오바마를 지지한 정치적 동료다. 그런 그조차 사석에서 금기어를 썼다는 사실은 미국 백인 사회에 차별의식이 얼마나 뿌리깊이 박혀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사실은 ‘타임’과 ‘뉴욕매거진’ 기자들이 쓴 <게임 체인지>라는 저서를 통해 알려졌다. 책은 이번주 발매되지만 출판사 웹사이에 일부 내용이 공개됐다. 미국 언론들은 책 내용을 인용해 9일 리드의 발언을 일제히 보도했다. 


파장이 일자 리드는 즉시 “그런 나쁜 말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상처를 준 것을 깊이 후회하고 사과한다”며 “나는 언제나 오바마 후보를 자랑스러워하면서 지지했고, 당선 뒤에는 그의 정책들을 입법화하는데 앞장서왔다”고 강조했다. 오바마도 성명을 내고 “그 문제라면 리드에게 사과를 받았고 이미 끝난 얘기다”라면서 진화에 나섰다. 오바마는 “리드가 사회 정의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며 감쌌다.


하지만 지역구인 네바다주에서 11월 중간선거에 나올 예정인 리드는 악재를 만났다. 리드는 공화당 예비후보들에게 지지율에서 밀리고 있다. 공화당 측은 “오바마더러 ‘선탠한 남자’라고 했던 베를루스코니(이탈리아 총리)와 다를 바가 무어냐”며 리드를 맹공했다. 


2006년 공화당 중견 정치인이던 조지 앨런은 아시아계 청년에게 ‘마카카(원숭이)’라고 욕하는 장면이 동영상사이트 유튜브에 올라와 낙선했다.

1940년대까지 미국 남부에서는 흑인 비하어가 버젓이 쓰였지만, 오래전부터 정치권에서 ‘N단어’는 금기어였다. 1948년 워싱턴포스트는 인종분리주의자인 공화당 스트롬 서몬드의 대선 캠페인을 다루면서 “N단어는 흑인(black people)에 대한 세련되지 못한 표현”이라 비판했다. (하지만 서몬드는 무려 100살까지 상원의원을 하며 천수를 누리다가 2004년 숨졌다)



60~70년대 민권운동이 활기를 띠고 ‘정치적 올바름(politically correctness)’ 운동이 펼쳐지면서 비속어 논란이 사회·문화 영역으로 확장됐다. 68년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는 베트남전 참전을 거부하면서 “베트콩들은 나더러 니그로라 부른 적 없다”고 발언해 ‘N단어’ 논란을 재점화했다. 일본계 여성예술가 오노 요코는 71년 “여성은 세계의 니그로(nigger)”라 발언해 다시 논란을 불렀고, 그의 남편인 존 레넌은 이듬해 아예 그 내용을 노랫말로 한 곡을 발표했다. 


2007년 뉴욕시 주민협의회는 상징적인 조치로 도시 내에서 니그로라는 단어를 누구든 쓰지 못하도록 결의했다.

하지만 리드 파문에서 보이듯 ‘N단어’에 배어있는 의식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3년 전 조지프 바이든 현 부통령도 당시 떠오르는 정치인이던 오바마에 대해 “세련된데다가 밝고 깨끗하고 외모도 멋진 최초의 아프리카계 주류정치인”이라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 1년 뒤 바이든은 오바마에게 사과했다.

‘N단어’는 아니더라도, 앤(Ann·흑인과 사귀는 백인 여성 혹은 백인이 되고 싶어하는 흑인 여성), 에이프(Ape·유인원), 버피(Buffie·흑인), 크로(crow·까마귀), 정글 버니(토끼)’, 모스헤드(mosshead·탄 머리), 겨자씨(Mustard seed·흑백혼혈), 삼보(검둥이) 등 흑인에 대한 비하어들이 많이 쓰인다.

유명 잡지 배니티페어의 다음달호 표지는 검은 상반신을 드러낸 타이거 우즈다. 잘 알려진대로 우즈는 아시아, 아프리카계 등 여러 인종의 혼혈이다. 인종이나 피부색과 상관없이 골프황제로 대접받던 그가, 나락에 떨어지는 순간 흑인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도 미국의 인종주의를 보여준다. 미 언론계 내부에서도 “우즈가 추락하자 새삼 그가 흑인 핏줄임을 부각시키는 경향(negroization)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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