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구속력 없는 포괄적 타협안…코펜하겐 ‘속빈 협정’ 논란

딸기21 2009. 12. 2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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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15차 당사국총회는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지도자들이 모두 모여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 뜻깊은 자리였다. 하지만 공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무성하다. 미·중·인도·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거대 탄소배출국들이 모두 회의에 참가, 합의안을 주도했으며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회의는 큰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2050년까지 기온이 올라가는 것을 묶기 위한 국가별 감축목표치를 설정하고 거대 개도국들에 의무를 부여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 때문에 “절반의 성공”, “문제는 이제부터다”, “비난과 우려 속에 나온 합의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ㆍ‘감축 목표’ 실패 “교토의정서보다 후퇴”
ㆍ개도국 자발적 감축·기금재원도 의문
ㆍ미·중 논의 당사자 ‘관심 환기’ 절반 성공



미국과 중국을 끌어내다

이번 회의는 17년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환경정상회의 이래 최대의 기후변화 국제회의였다. 교토의정서 체제에서 부과된 온실가스 의무감축을 거부, ‘공공의 적’ 취급을 받던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기후변화 대응체제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미국, 중국, 인도 등 거대 온실가스 배출국들을 논의 당사자로 만든 것은 최대 성과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강대국들에 휘둘린 측면도 있었다. 온실가스 줄이기에 누구보다 앞장서온 유럽은 들러리가 됐고, 그동안 논의에 훼방을 놓았던 미국과 중국이 오히려 주인공이 됐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과 중국이 이끄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그대로 보여준 회의였다”고 평했다.
선진국과 개도국, 산유국과 섬나라, 힘 센 나라와 약소국들이 한 자리에 모여 난상토론을 벌인 것은 이번 회의의 진풍경이었다.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끼인 개도국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크게 들린 자리였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피해국들 스스로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내고 관심을 환기시킨 것도 성과였다.

협정 아닌 협정

이번 회의 뒤 정상들은 ‘코펜하겐 협정(Copenhagen Accord)’을 내놓음으로써 간신히 결렬을 피했다. 하지만 협정을 공식 채택한 것이 아니라 ‘이 합의에 유의하기로 한다(take note)’는 기묘한 선언으로 막을 내렸다. 미흡한 협정안에 남태평양 섬나라 투발루 등 일부 국가들이 격렬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법적 구속력이 없는 협정에 불과하며, 모든 중요한 논의는 뒤로 미뤄졌다.
이 협정 아닌 협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구 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2℃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지구적인 기후변화 상한선이 정해졌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205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량 목표를 정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또한 향후 논의에서 온실가스 감축의 기준치를 리우회의에서 얘기된 1990년으로 할지, 미국이 고집하는 2005으로 할지는 정하지 못했다.
기후변화 피해국들을 지원하기 위해 1000억달러의 기금을 만들기로 한 것은 큰 진전이지만 장기적인 기금마련 계획은 역시 추후 논의에 맡겨졌다. 개도국들은 온실가스를 ‘자발적’으로 줄인다 했는데 이를 누가 어떻게 점검할지도 의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교토의정서 체제보다도 후퇴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기대 못미쳤다” 실망한 세계

오바마 대통령은 19일 백악관 귀환 직후 성명을 발표,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주요 경제국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연대책임을 약속했다”며 “국제사회가 해야 할 행동의 토대를 구축했다”고 평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오바마가 미국의 국익만을 고집하지 않고 실용주의적인 접근을 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영국 더타임스는 “지연, 항의, 혼돈 속에서도 긍정적인 진전을 보여준 정상회의였다”고 평했다.
하지만 전반적인한 평가는 냉랭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많은 진전을 이뤄냈지만 야심이 별로 안 보이는 협정”이었다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과 미국 뉴욕타임스는 “코펜하겐 회의는 실패작”이라 못박았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일본만 높은 감축목표를 내놓은 셈”이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준비를 제대로 못한 덴마크의 외교력과 집행절차 등에도 비난이 쏟아졌다. 유엔총회처럼 세계 각국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중구난방으로 토론하는 ‘메가 컨퍼런스(초대형 국제회의)’ 식의 비효율적인 논의방식에 대한 지적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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