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1889년 9월 23일 닌텐도 설립

딸기21 2009. 9. 2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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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대 비디오게임 제조회사인 닌텐도(任天堂)는 1889년 9월 23일 교토에서 설립됐다. 당시 이름은 닌텐도곳파이(任天堂骨牌).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지금 정보통신(IT) 산업의 총아로 각광받는 닌텐도의 시작은 다름아닌 ‘화투’였다.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하나후다 즉 화투는 모두 수제품이었고, 닌텐도의 상품들도 뽕나무 판에 하나하나 손으로 그린 것들이었다. 

 
창업자 야마우치 후사지로(山內房治郞)는 먼저 교토와 오사카 두 곳에 점포를 내고 화투를 팔았는데 이 가게들이 잘 돼 사업을 확대했다.
야마우치는 조수들을 고용해 생산량을 크게 늘렸다가 나중에는 대량생산 체제를 만들고 ‘닌텐도배(杯)’라는 화투 대회까지 만들며 경영수완을 발휘했다. 1902년 일본 최초로 트럼프 카드를 만들어판 것도 야마우치였다.

야마우치의 사업감각이 빛을 발한 것은 패전 직후인 47년이다. 그는 주식회사 마루후쿠(丸福)라는 별도 회사를 설립, 미국의 월트디즈니 프로덕션과 계약해 디즈니 캐릭터들이 그려진 트럼프 카드를 생산해 수입을 올렸다. 하지만 닌텐도를 다국적기업으로 키운 공신은 그의 손자로인 야마우치 히로시였다. 
 
56년 합작사업을 논의하려고 미국을 방문한 히로시는 미국 최대 카드회사라는 플레잉카드의 본사조차 변변찮은 작은 사무실에 입주해 있는 것을 보고서 카드를 만들어파는 것으로는 성공에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60년대에 일본이 전후 호황에 들어서자 닌텐도는 ‘러브호텔’ 산업과 운수업, 인스턴트 밥 판매 등 여러 틈새산업에 손을 댔지만 모두 실패였다. 더군다나 64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인들의 오락이 TV에 집중되면서 카드 판매도 급감했다.

66년 닌텐도는 카드 장사를 그만두고 울트라핸드라는 회사와 손잡아 완구업에 진출했다. 중대한 전기를 가져다준 사람은 비디오게임 제작파트를 맡은 엔지니어 요코이 군페이(橫井軍平)였다. ‘울트라머신’, ‘러브테스터’, ‘코센주’ 등 닌텐도의 히트작 게임들이 줄지어 탄생했다. 
그러나 이 때까지도 닌텐도는 완구·게임업계의 선발주자였던 반다이(Bandai)나 토미(Tomy)에 뒤쳐져 있었다. 닌텐도가 명실상부 ‘전자시대’에 들어간 것은 70년대가 되어서였다. 닌텐도는 전자 광선총 사격게임들을 만들어 게임에 관심이 없던 어른들까지도 고객층으로 만들었다. 77년 닌텐도는 컬러TV에 맞춘 최초의 비디오게임 콘솔 판매에 들어갔으며, 발군의 게임디자이너 미야모토 시게루(宮本茂) 덕에 게임업계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81년 미야모토가 내놓은 ‘동키콩(위 그림)’은 게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초대형 히트작이었다. 휴대용 미니게임기와 TV용 콘솔형 게임기 시장 모두에서 닌텐도는 승승장구했다. 85년에는 또다른 히트작 ‘수퍼마리오’와 함께 미국에도 진출했다. 89년 요코이는 ‘겜보이’를 개발해 닌텐도에 거듭 성공을 안겼다. 2000년대 들어서도 ‘닌텐도DS’와 ‘닌텐도Wii’를 잇달아 히트시켰다.

지난 2월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는 왜 닌텐도DS 같은 것을 만들지 못하느냐” 했다 화제가 된 적 있다. 장난기 많은 누리꾼들은 이를 패러디한 우스갯거리들을 일제히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반년밖에 안 돼 닌텐도는 MS와 애플, 소니 등의 거센 도전에 부딪쳐 판매량이 급감했다. 순식간에 바뀌는 첨단산업의 흐름을 주도하려면 얼마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지를 닌텐도가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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