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어제의 오늘/ '안디잔 학살'과 한국 대통령

딸기21 2009. 5. 1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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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5월 13일,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동쪽 끝 안디잔 지역에서 정부 보안병력이 주민들에게 발포, 수백 명이 숨졌다.
이른바
‘안디잔 학살’로 불리는 이 사건의 희생자는 정부 발표에 따르면 187명, 주민들과 국제 인권단체들의 주장에 따르면 수백 명에서 많게는 5000명에 이른다. 지난해 9월 자유유럽라디오(RFE) 방송은 우즈베크 정보국 ‘내부고발자’를 인용해 “정보당국이 확인한 것으로도 1500명 이상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우즈베크는 1990년 옛소련에서 독립한 이래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1인 통치를 받고 있다. 20년째 장기집권하고 있는 카리모프와 그 딸, 사위 등 일가족이 나라 전체를 쥐고 있다. 세계 최대 목화생산국 중의 하나인 이 나라에서는 면화 기름(면실유) 판매조차도 카리모프 일가가 쥐고 있다.
부패한 정부는 탈사회주의 개혁개방에 실패한 채, 아랄해 등지의 석유·천연가스 자원을 외국에 팔아 유지하고 있다. 
 
학살이 일어난 안디잔은 무능한 정부 대신 이슬람 조직들이 활성화돼있던 곳이었다. 이 지역 이슬람 조직들은 무슬림 소기업가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과부들과 고아들을 도우며 소액금융과 구호활동 등을 맡아 했다. 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이 높아지자 이슬람 세력이 그 빈 자리를 메우며 신망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히즈밧 타흐리르(해방당)’라는 무슬림 그룹이 정부 전복과 테러공격을 꾀했다며 2004년 6월 이 조직 회원 23명을 잡아가둔다. 
정부는 미국의 대테러전 명분을 빌려, “극단주의 테러용의자 23명을 체포해 재판 중”이라고 밝혔으나 주민들은 “이슬람 신용기관과 협력해온 사업가들일 뿐”이라며 반발했다. 이슬람 조직들과 주민들의 반발은 더욱 커졌고, 반정부 시위가 계속됐다.
이듬해까지 이어진 시위는 갈수록 격해졌고, 5월10일부터는 반카리모프 계열 주지사 강제 축출까지 겹치면서 연일 시위가 이어졌다. 정부는 끝내 자국민들에 발포해 학살을 저질렀다.
 
학살의 희생자 수를 비롯해, 안디잔 사건의 실상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사건 당시 우즈베크 정부는 외신들의 현장 취재를 철저히 봉쇄했을 뿐 아니라,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국 내에 들어와 있던 외국인들까지 내보냈다.
우즈베크에 들어가 있던 외국인 선교사들도 모두 내몰렸다. 지금도 외국인 관광객들의 우즈베크 방문은 극도로 제한돼 있으며, 외국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활동도 사실상 봉쇄돼 있다.
 
안디잔 학살이 일어나자 서방은 일제히 카리모프 정부를 비판했다. 카리모프는 이에 맞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빌려줬던 군사기지를 다시 빼앗고, 중국·러시아와 밀착하기 시작했다. 우즈베크 인권을 강력 비난한 유럽과는 완전히 등을 돌렸다.
학살 당시 노무현 한국 대통령은 마침 우즈베크를 방문 중이었다. 한국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손가락질을 받는 카리모프와 악수를 나누며 이른바 ‘자원외교’를 벌였다. 학살 뒤 카리모프는 “한국 언론들에 감사한다”는 말까지 해, 한국의 ‘반인권 외교·인권외면 언론’의 현실을 반증해보였다. 
 
카리모프는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자원외교의 주요 상대국으로 국내 언론들에 자주 소개된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친분’까지 심심찮게 보도되곤 한다.
공교롭게도 안디잔 학살 4주년에 즈음해 이대통령은 우즈베크를 방문했고, 이번에도 역시 ‘자원외교의 성과’들이 흘러나왔다. 안디잔 사람들은 카리모프와 손 맞잡는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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