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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수장 맞은 러시아 정교

딸기21 2009. 2. 3.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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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교회가 수장을 새로 뽑았다. 이타르타스 통신은 러시아 정교회 제16대 총대주교에 키릴(62) 대주교가 선출됐다고 27일 보도했다. 화려한 이콘(icon·도상)들로 가득한 모스크바 구세주교회에 둘러앉은 정교회 사제·주교들의 총대주교 투표와 키릴 총대주교의 취임식을 담은 사진들이 외신들을 장식했다.
세간의 관심은 러시아 정교라는 종교 자체보다는, 민족주의와 결합해 ‘강한 러시아’를 이끄는 정신적·문화적 지주가 되고 있는 정교의 ‘국가적 역할’에 쏠려 있다. 새 총대주교의 선출로 오랜 세월 고립됐던 러시아 정교회가 현대적인 종교로 변신할지, 또 크렘린과는 어떤 관계를 맺을지도 관심거리다.


‘1000년의 고립’ 정교의 부활

정교는 1000여년 전 로마 가톨릭과 갈라진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의 공식 종교다. 국내에도 러시아 정교회가 들어와 있지만 신자 수는 많지 않다.
로마 교황청으로 중앙집중화돼 있는 가톨릭과 달리 정교는 지역·민족에 따라 교리와 전례가 다르다. 통칭 ‘동방정교’, ‘동방교회’, 혹은 ‘정교’라 부르지만 그 안에는 러시아 정교회, 세르비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등이 제각각 존재한다.

러시아 정교회는 단연 정교 내 최대 종파다. 러시아는 차르 제국 시절부터 동방교회의 계승자를 자처해 왔다. 소비에트 혁명 이후에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아래 탄압을 받으며 근근히 명맥만 유지해오다가 1980년대 글라스노스트(개방) 시대를 맞아 교회 문을 다시 열기 시작했다.
90년대에 정교회는 급속히 세를 확장했다. 러시아 정교의 부활은 수치상으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현재 러시아 정교회에는 157개 교구, 2만9263개의 관구가 있고 주교가 203명, 사제가 2만7216명이나 됐다. 러시아정교회(ROC) 외에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해외 러시아정교회(ROCOR)이 따로 있는데, 이들은 옛소련 시절 러시아 밖에서나마 정교의 맥을 잇는 역할을 해왔다.

현재 세계적으로 러시아 정교회 신자가 얼마인지를 알려주는 객관적인 데이터는 없다. 정교회 측은 러시아 내에만 1억명 이상의 신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 인구의 65%는 스스로를 정교신자로 인식하고 있고, 옛소련에서 독립한 벨로루시와 우크라이나에도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이 많이 있다.
전세계 신자 수는 1억3500만명에서 2억8000만명까지 추정치가 크게 엇갈린다. 정교는 러시아에서는 ‘종교’라기보다는 ‘문화적 전통’으로 봐야한다는 시각도 있다.


정교회 수장 선출식 사진이예요. 성당이 넘 멋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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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과 교회 사이

특히 90년부터 지난해 서거 전까지 재위했던 알렉세이2세는 현대 러시아 정교의 부흥을 이끈 인물이다. 그러나 ‘정교의 부활’ 뒤에는 어두운 이면이 자리잡고 있다. 옛소련 국가정보국(KGB)과 결탁, 지역 인사들의 동향을 건네주거나 크렘린의 선전을 대신해주면서 교회 조직을 확장했다는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는 것.
러시아 언론들은 90년대 정교회가 ‘KGB의 지부’로 활동했음을 보여주는 KGB 내부 문서들을 폭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알렉세이2세는 교회 부활의 주역이라는 칭송과, 교회를 크렘린에 종속시킨 주범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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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알렉세이2세(오른쪽 사진)는 2000부터 8년간 집권한 뒤 지난해 총리로 내려앉은 러시아의 실세 블라디미르 푸틴과 밀접한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이 다정히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종종 외신을 장식하기도 했다. 알렉세이2세는 푸틴이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던 90년대 말 체첸독립 탄압 전쟁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

실제 푸틴은 ‘정교-민족주의-크렘린 권력강화’를 사실상 하나의 패키지처럼 운용해왔다. 옛소련에서 물려받은 정보기관의 힘과 오일달러의 위력에 정교라는 도덕적·종교적·문화적 기반을 결합시켜 크렘린의 권력을 키웠던 것이다.
일례로, 2002년 로마 교황청이 ‘러시아 교구’를 신설, 본격 선교에 나서면서 가톨릭과 러시아 정교회 간 갈등이 불거진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러시아에서는 배타적인 민족주의와 반서방 감정이 치솟았다. 정교회 안에서도 민족주의 혹은 ‘러시아 중심주의’ 경향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4월 뉴욕타임스는 “크렘린이 정교회를 국가종교로 지원하면서 기독교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주요 도시들에서 스킨헤드족이 기승을 부리면서 외국인, 특히 유색인종에 대한 테러와 린치를 자행하는 등 왜곡된 민족주의 바람이 거세지고 있던 때였다.
서방 언론들은 크렘린과 정교회가 손잡고 민족주의라는 이름 하에 우익 폭력을 묵인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푸틴은 당시 반서방 기수가 되어 미국과 대적하면서 ‘강한 러시아’의 위상을 과시하고 있었다.

개방과 현대화의 길 걸을까

러시아 정교는 가톨릭 못잖게 위계질서가 강하다. 개별 교회에는 나스토야텔(사제)이 있다. 교회는 주교가 이끄는 에파르키(교구)에 소속된다. 각 에파르키들이 모여서 포메스트니(지역협의회)를 구성한다.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기구는 주교협의회다. ‘신성한 회의’라 불리는 주교협의회 내에는 7명의 상임 멤버가 있는데, 그 중 핵심은 총대주교와 모스크바 대주교다. 총대주교는 가톨릭 교황에 버금가는 지위에 있지만 권한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교황과 달리 총대주교는 신앙과 교리 등 주요 이슈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다.

지난해 서거한 알렉세이2세의 뒤를 잇게 된 키릴 총대주교는 모스크바 구세주성당에서 대주교와 주교, 일반 사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투표에서 508표를 얻어 169표에 그친 클리멘트 대주교를 누르고 추대됐다. 옛소련 붕괴 뒤 처음 열린 정교회 선거였다.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스부르크)의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난 키릴 총대주교는 22세 때 정교회 사제가 됐고 76년 주교에, 84년 대주교에 임명됐다. 
가디언 등 외신들은 키릴 총대주교가 러시아 정교회를 ‘현대화 시킬 사람(modernizer)’이라 평하고 있다. 근 20년 간 정교회의 대외 업무를 맡아오면서 보수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바티칸과의 대화를 모색하는 등 개혁 성향을 보여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기독교의 오랜 숙원이자 과제인 교황의 모스크바 방문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도 나오고 있다. 교황청도 키릴 총대주교가 선출된 뒤 즉각 축하와 환영의 메시지를 보내며 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크렘린과 서방의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교황이 구세주성당에서 정교회 총대주교와 함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문제는 역시 ‘크렘린’이다. 키릴 총대주교는 개방적, 개혁적이면서 정치 감각도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크렘린은 키릴 총대주교 선출을 탐탁치 않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더타임스는 “교회를 향한 크렘린의 감시의 눈길 또한 강해질 것”이라 내다봤다. 키릴 총대주교가 크렘린의 입김에서 교회를 독립시킬 수 있을 지는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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