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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흑인 사회 '감격과 환희'

딸기21 2009. 1. 2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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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앨라배마주 셀마에 사는 흑인 여성 목사 프랭키 허친스(56)는 아홉살이던 1962년의 어느날 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장을 보러 나간 줄만 알았던 어머니는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흑인 참정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주도했다가 감옥에 간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당시 셀마 주민의 절반이 흑인이었지만, 투표권을 가진 사람은 1%에 불과했다. 목화농장 노예의 딸로 태어난 허친스의 어머니는 풀뿌리 흑인 민권운동에 투신한 선구자였다. 

어머니의 투지를 물려받은 허친스는 ‘흑백 분리’를 거부하고 백인들이 다니던 고교에 들어가 차별에 맞섰다. 신학교를 졸업, 셀마 최초의 흑인 여성 목사로 일해온 그는 20일 두 딸과 손녀의 손을 잡고 워싱턴으로 향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을 보기 위해서다. 허친스는 “백인 학생들은 ‘검둥이’라 욕하며 내게 나뭇가지를 집어던지고 교실에서 내 책상을 없애곤 했다”면서 “하지만 나는 힘든 시절을 이겨냈고 손녀들에게 흑인 대통령의 취임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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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family's long road to the Obama inauguration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기사)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등 미 언론들은 허친스와 같이 노예의 자손으로 태어나 민권운동을 통해 성장한 흑인들이 감격과 환희 속에 ‘역사적인 첫 흑인 대통령’의 취임식을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취임식을 보러 워싱턴에 왔다는 도로시 맥기(71)는 “40여년 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을 들으러 왔다가 경찰견에 물리고 소방호스에 얻어맞던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오늘 같은 날이 올 줄 몰랐다”며 눈물을 흘렸다.
 
19일은 오바마 취임 전날이자 킹 목사 기념일이기도 해 어느 때보다 성대한 축하행사들이 펼쳐졌다. 킹 목사가 설교했던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에벤에셀 침례교회에는 1000여명이 모여 3시간 동안 기념예배가 진행됐다. 킹 목사의 조카인 아이작 뉴튼 패리스는 “오늘은 아주 특별하고 역사적인 날”이라며 ‘버락 후세인 오바마’의 이름을 외쳤고, 예배 참석자들은 환호성과 기립박수를 보냈다.


오바마의 취임은 흑인 사회에서 ‘킹 목사의 꿈이 구현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CNN이 1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 흑인의 69%는 “오바마 대통령의 탄생으로 킹 목사의 인종평등 꿈이 실현됐다”고 응답했다. 킹 목사와 민권운동을 함께 했던 존 루이스 하원의원은 시사주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취임식장에서 내 감정을 추스를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흑인 민권운동가인 제시 잭슨 목사도 “오바마의 취임은 변혁이 시작되는 순간”이라며 감격해했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국 사회 전반에서 ‘흑인 중산층’의 약진이 최근 두드러지고는 있으나 여전히 백인들과 흑인·유색인종 간에는 계급·계층 격차가 존재한다. CSM은 “흑인가정의 평균소득은 백인가정 소득의 3분의2에 그치고 있다”면서 대학등록률, 교도소 수감률 등의 여러 통계치를 들어 흑인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유명 흑인 방송인 태비스 스마일리는 “흑인들은 오바마의 취임에 따른 기쁨을 즐기지만 말고 흑인 사회의 현실도 들여다봐야 한다”며 “오바마 정부가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지켜보자”고 말했다. 킹 목사의 아들 마틴 루터 킹 3세는 20일자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아버지는 언젠가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날이 오리라고 믿고 계셨을 것”이라면서 “오바마는 노예제를 철폐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흑인 민권법을 채택한 린든 존슨 대통령, 흑인들을 위해 투쟁했던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 그리고 내 아버지의 꿈을 이어갈 의무를 안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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