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파산 직면 아이슬란드 ‘시장 무한개방의 실패’

딸기21 2008. 10. 20.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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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금융허브’로 각광받던 북구의 소국 아이슬란드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최대 희생양이 되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유럽에서 가장 먼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지급불능 위기에 처한 아이슬란드는 주요은행 전면 국유화라는 극약처방까지 썼지만 위기에서 헤어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금융산업에 ‘올인’, 시장의 빗장을 풀고 외국돈을 끌어모으다가 시장의 요동 속에 한파를 맞은 아이슬란드의 현실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로이터통신은 19일 아이슬란드 정부가 러시아로부터 한 달째 금융지원을 약속받지 못해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내밀어야 할 판이라고 전했다. 아이슬란드는 현재 IMF에 긴급지원이 가능할 지를 타진한 상태로, 공식적으로 구제금융을 신청하지는 않았다. 가이어 하르데 아이슬란드 총리는 러시아가 지원을 거부할 경우 이번 주중 IMF 구제금융을 받을지 여부를 결정해 발표할 방침이다. 크렘린이 아이슬란드 지원에 유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결국 IMF에 손을 벌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IMF가 아이슬란드에 무제한 긴급 융자를 실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보도했다. 아이슬란드 은행들에 막대한 예금이 들어가있는 벨기에, 룩셈부르크도 자국 예금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단 아이슬란드 측을 긴급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아이슬란드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럽을 강타하면서 지난달말 주요 은행들이 예금지급불능 상태를 맞는 등 위기에 빠졌다. 국가신용등급도 떨어졌으며 주식시장은 붕괴 상태로 치달았다. 정부는 지난달말부터 이달초까지 1~3위 은행인 카우프싱, 란즈방키, 글리트니르를 모두 국유화했다. 아이슬란드 화폐인 크로나 가치는 폭락했다. 아이슬란드는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 대부분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기 때문에 크로나 가치 폭락은 서민들의 삶에 직격타를 날렸다. 
정부는 외화 규제에 나서 기업들이 식량·에너지 구입 이외의 용도에 외화를 쓰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벌써 암시장이 생겨났다. 현지 언론들은 익명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몇몇 지역에서는 정부가 이중환율을 묵인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아이슬란드 사람들 사이에서는 최근 ‘1970년대 국가통제 시기로 돌아간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국가적 위상이 추락한 것은 물론이다. 아이슬란드는 당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선출이 유력시됐었으나, 지난 17일 표결에서 오스트리아와 터키에 패했다.

아이슬란드는 인구가 32만명에 불과하고 변변한 천연자원도 없는데다 농업마저 힘든 기후를 갖고 있다. 이 나라는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수출의 40%가 어업에서 나올 정도로 개발이 덜 된 나라였으나, 2000년대 들어 금융강국으로 거듭났다. 
정부와 금융산업의 성장전략은 단순했다. 글로벌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맞춰 ‘외국돈으로 장사를 하는’ 것이었다. 규제를 없애고 금리를 올리자 유럽의 넘쳐나는 자금이 흘러들어왔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영국, 벨기에, 룩셈부르크에서 수많은 예금자들이 몰려들어 아이슬란드 은행들에 계좌를 만들었다. 
그 돈으로 은행들은 유럽 내 부동산과 기업들을 사들였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영국 런던 고급주택가 겸 패션거리인 하이스트리트 건물 상당수가 아이슬란드 은행 소유”라고 전했다.  다른 나라보다 규제가 없었던 탓에 러시아의 ‘검은돈’도 상당수 아이슬란드에 흘러들어가 투기자금으로 변질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슬란드 최대 부자인 토르 비요르골프손(40) 같은 이들은 러시아 오일달러를 끌어들여 유럽 전역에 투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아이슬란드 은행들은 자신들이 사들일 예정인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그 자산을 매입하는, 이른바 ‘레버리지 바이아수(LBO)’을 많이 했다. 정부는 ‘금융시장 자유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은행들의 투기를 용인해줬다. 미국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의 주요 경제자유지수들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상위권이었다. 경제자유지수는 94.5점(이하 100점 만점), 지적재산권보호지수는 90.0점, 반부패지수는 96.0점, 교역자유지수는 85.0점이었다. 이 때문에 아이슬란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신자유주의 경제시대의 모범’으로 각광받았었다.

하지만 금융산업에 모든 역량이 쏠리는 동안 제조업 등 다른 분야에서의 경쟁력은 별로 나아지지 못했다. 외국자본 의존도가 높다는 사실은 부메랑처럼 타격이 되어 돌아왔다. 외자유치에만 목을 맸던 기업과 국민들은 이제야 허상을 깨닫기 시작했다. 
경제학자 가우티 크리스트만손은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외국 돈이 쏟아져들어올 때엔 그게 다 공짜인줄 알았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알거지가 돼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온국민이 주인 없는 거대한 카지노에 들어갔다 나온 것만 같다”며 “아무 비판 없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받아들인 아이슬란드인들은 이제 새로운 공산당선언이라도 내놔야 할 처지가 됐다”고 털어놨다.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금산분리와 지주회사 규제의 완화를 추진 중인 한국 정부가 새겨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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