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신 브레튼우즈 체제로?

딸기21 2008. 10. 1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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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고든 브라운 전총리가 1년 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강연하면서 “신(新) 브레튼우즈 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을 때만 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이대로는 안된다”“새로운 글로벌 경제 관리체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힘을 얻고 있다. 


브라운 영국 총리의 주장에 파스칼 라미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과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등이 가세하고 나서면서 ‘신브레튼우즈론’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트리셰 총재는 “다시 규율(discipline)로 돌아가야 한다”며 세계가 통제된 시장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4일 보도했다.

기존 브레튼우즈 체제는 미국을 중심으로한 몇몇 선진국들 간 통화관리에 초점을 맞춘 것이어서 전세계가 연결된 글로벌시대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시장의 고삐를 다시 잡아야 하는데 ‘옛날 그 체제’로는 안 되니, 브레튼우즈 체제를 업그레이드해 새로운 규제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 ‘신브레튼우즈론’의 취지다. 신자유주의의 밑바닥부터 수술해 글로벌 금융관리체제를 만들려는 움직임은 이른 시일 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체제가 형태를 갖추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번 금융위기는 통화량·환율 뿐 아니라 자산가치, 고유가에서 비롯한 인플레이션, 회계기준, 신용평가, 파생금융상품 등 경제의 거의 모든 영역에 새로운 규제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을 드러내보였다. 

하지만 신브레튼우즈체제가 갖춰야 할 ‘규제의 강도 및 범위’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찰스 칼로미리스 미 컬럼비아대 비즈니스스쿨 교수 같은 이들은 여전히 “은행 부채 기준만 강화하면 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누가 규제를 총괄할 것이냐도 문제다. 라미 WTO 사무총장은 “결국 누가 사인(결재)을 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표현했다.

▲권한을 기존 브레튼우즈 기구에 줄 것인가, 새 기구를 만들 것인가
▲새로운 체제의 형식은 국제조약이 될 것인가
▲각국 정부로부터 독립돼 있는 중앙은행들을 누가, 어떻게 관리감독할 것인가
▲새로운 관리감독체제 자체를 어떻게 모니터링할 것인가 등등

쟁점은 너무 많다. 일각에서는 “국제결제은행(BIS) 산하 바젤금융감독위원회 같은 기존 기구들만 잘 활용해도 된다”며 새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기존 브레튼우즈 기구들은 의사결정 구조가 비민주적이고 미국 등 몇몇 나라의 입김에 휘둘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기구들의 권한을 강화하려 한다면, 그 이전에 의사결정 구조를 민주화하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규제를 확대하는 문제를 놓고 미국과 유럽 사이에는 분명 ‘온도 차이’가 존재한다.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은 벌써 유럽의 규제 강화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새 체제의 성격을 놓고 미국 대 유럽, 혹은 ‘미국 대 나머지 세계’ 간 대립이 재연될 수 있다.


브레튼우즈 체제란

1944년7월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의 마운트워싱턴 리조트에서는 44개국 대표 7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제통화·금융회담이 열렸다. 참가국들은 “통화정책을 조율하기 위한 규칙·기구·절차를 만든다”는 결정을 했다. 이른바 ‘브레튼우즈 협정’이다.
회원국들은 자국 통화가 “금에 맞춰 고정된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통화정책을 실시한다”고 약속했으며, 이 합의를 지키기 위한 기구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통칭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창설됐다. 뒤에 IBRD에 네 개의 기구가 추가됨으로써 IMF와 총 5개의 ‘세계은행그룹’으로 이뤄진 ‘브레튼우즈 기구’가 완성됐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상호 독립된 국가들 간 통화정책의 공조를 제도화했다는 역사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체제는 30년대 대공황의 악몽과 세계대전을 겪은 자본주의 진영 주요국가들의 자구책이었다.
경제학자들은 이 체제의 핵심 개념을 ‘경제안보’라는 것으로 설명한다. 각국 정부는 환율을 통제하고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케인즈주의적 경제정책을 실시했으며 이는 냉전 시대의 국가안보와도 맞물려 있었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을 떠받치는 근간은 미국이라는 강력한 경제 패권국의 존재였다. 미국은 세계 기축통화가 된 달러를 유럽 전후 재건사업 등에 풀면서 세계로 ‘번영을 수출’했다.

그러나 미국의 ‘달러 팽창주의’는 60년대 이후 역풍을 맞기 시작했다. 미국의 국제수지가 악화되고 달러를 비롯한 주요 화폐 가치가 계속 떨어지면서 고정환율제를 더이상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67년 영국의 파운드 절하에 이어 71년에는 미국이 금 태환을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돌아섰다. 이른바 ‘닉슨쇼크’였다. 3년 뒤 주요 20개국이 공식적으로 고정환율제를 포기함으로써 금본위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80년대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리자 고정환율·규제·정부개입·케인즈주의 등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IMF와 세계은행까지 신자유주의의 최전선에 나서 개발도상국들에 시장지상주의와 탈규제를 강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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