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푸틴이 원하는 것

딸기21 2008. 8. 1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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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러시아의 오랜 상처에서 고름을 짜내기 시작했다.”(미국 뉴욕타임스)
러시아가 사실상 백기를 든 그루지야에 그토록 가혹한 ‘응징’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남오세티야를 보호하고 평화유지 작전을 수행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루지야를 넘어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의 지정학 지도를 다시 그리려 하는 것이라는 시선이 많습니다. 오일달러로 ‘붉은군대’를 재무장한 러시아가 무력으로 부활을 과시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네요.

미국 보수잡지 ‘뉴리퍼블릭’의 편집장 로버트 케이건은 11일자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러시아의 그루지야 공격을 ‘침략’으로 규정하면서 “푸틴의 제국주의적 야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러시아의 그루지야 공격은 코소보 독립선언 때 세르비아로 탱크를 보내 ‘시위’를 한 것과는 다르고, 오히려 2003~4년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의 친서방 민주화 혁명에 대한 보복으로 봐야 한다는 건데요. 이 말을 한 놈이 꼴통이긴 하지만, 과히 틀린 소리는 아닌지도 모르겠네요.
독일 외교전문가 알렉산드르 라흐르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지난 20년 동안 자기네가 당해왔다고 느낀 모든 치욕을 지금 그루지야에 쏟아내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말 그런가 싶었는데, 그루지야 대통령을 전범재판에 부치자는거 보니깐 '서양이 했던 짓' 일부러 따라하며 비꼬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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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카프카스는 반세기 넘는 기간 옛소련 땅이었지요. 그러나 소비에트가 무너진 뒤 지역 판도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특히 소련에서 갈라져나온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는 노골적인 친서방·친미 행보를 보였습니다.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의 군사기지가 있는 곳이지만 근래 유럽연합(EU)을 기웃거리고 대미 우호국으로 돌아섰지요. (워낙 미국에서 아르메니안의 목소리가 크기도 하고... 미국 내 아르메니아인은 30만명이 좀 넘는데, 로비 잘 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특히 러시아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하면서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 군사기지를 설치한 것이었습니다.
러시아는 2001년 중국과 함께 출범시킨 ‘상하이협력기구(SCO)’를 통해 텃밭 단속에 나섰고, 2006년 우즈베크 미군기지를 몰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유라시아 복판에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진 못했지요.
미국은 그루지야에는 공식적으로 군대를 두고 있지 않지만 그루지야군 훈련 명목으로 미군 교관 130여명을 파견해놓고 있습니다. 그루지야 경찰 양성과 군수품 공급을 맡은 미국 민간군사용역회사(PMC) 직원들도 상당수 체류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이 그루지야군의 군사행동이 시작되자마자 트빌리시의 미군들에게 ‘사태에 개입하지 말 것’을 지시한 것도 자칫 발생할수 있는 충돌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러시아는 그루지야 사태를 기회로 삼아 서방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고 중앙아·카프카스에서 영향력을 다시 공고히 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뉴욕타임스는 “푸틴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러시아가 그루지야내 자치공화국인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를 이참에 영토적으로 병합하려는 목적은 아닌 것으로 보이고... 미국이 주장하듯 그루지야에서 미하일 사카슈빌리 정권을 몰아내고 ‘레짐 체인지(정권교체)’를 하려 했던 것인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모스크바 정치연구소(IPS)의 세르게이 마르코프 연구원은 “미국은 러시아를 침략자로 보이게 만들려고 더러운 게임을 하고 있지만 사실 푸틴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제는 중앙아·카프카즈 지역이 지정학적으로 너무나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이 지역은 ▲미국의 대테러전쟁과 연결돼 있고 ▲미국의 ‘최대의 적’으로 부상한 이란과 인접해 있으며 ▲카스피해 유전지대와 유럽을 잇는 파이프라인이 지나는 곳이고 ▲남오세티야·압하지야·체첸·나고르노-카라바흐(아제르바이잔령) 등의 소수민족 분리운동 뇌관이 있는 곳입니다.
블룸버그통신은 러시아가 세력 확대에 나설 경우 중앙아시아-유럽 에너지 수송로 안전을 보장하고 이란을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대외정책에 타격이 올 것이라 내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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