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잠보! 아프리카

'인종차별 비디오'에 남아공 발칵

딸기21 2008. 2. 2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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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높은 흑백 분리 정책을 펼쳤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물러난 뒤로 10여년간 힘겹게 `인종 화합'을 추진해온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엽기적 인종차별이 담긴 비디오 때문에 다시 소용돌이를 맞고 있습니다. 백인 대학생들이 흑인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모습이 담긴 비디오가 공개되면서 거센 시위가 일어나고 정부의 인종통합 정책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남아공 사파(Sapa)통신 등이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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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비디오는 남아공의 행정수도인 중부 내륙 블룸폰테인의 자유주대학에서 지난해 촬영된 것으로, 백인 대학생들이 흑인 노동자 5명을 학대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동영상 속 대학생들은 여성 4명과 남성 1명 등 나이든 흑인 노동자들을 데려다가 같이 운동경기를 하며 웃고 떠듭니다. 마지막 `반전'에서 한 백인 대학생은 고기가 담긴 그릇에 소변을 본 뒤 이를 흑인들에게 억지로 먹입니다. 화면과 함께 "이것이 바로 흑백 통합"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영상을 찍은 백인 학생들은 아프리칸스어(語)로 녹음된 나레이션을 통해 정부 당국의 흑백 통합 정책에 대한 항의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어에서 변형된 아프리칸스는 분리주의 시절 백인 주류세력의 언어죠. 대학 측의 조사 결과 학대를 당한 이들은 지난해 인종통합 프로그램에 따라 이 학교 기숙사에 고용돼 일하고 있던 사람들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6일 이 비디오가 공개된 뒤 남아공 전역에서 항의가 빗발쳤고, 대학 내 흑인 학생들과 흑인 직원들은 학교 당국에 인종차별 관행을 없앨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했습니다. 항의시위가 계속되자 대학측은 27일에는 모든 수업을 중단시켰습니다.

남아공 흑인단체들과 인권단체들은 1994년 백인정권이 물러나고 벌써 14년이 됐지만 여전히 이같은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데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자유주 대학이라는 곳은 원래가 백인 편향의 교육기관이었고, 지금까지도 백인 세력의 아성처럼 남아있는 곳이라고 해요. 이 학교의 학내 통신망에는 "흑인 제외, 기독교도 룸메이트 구함" 따위의 광고글이 버젓이 올라오고, 학생들이 알비노(백색증) 병에 걸린 학생을 조롱하는 등 피부색을 농담거리로 삼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Sapa는 전했습니다.
비디오 파문이 일자 정부 산하 인권위원회(SAHRC)는 인권 침해 부분에 대해 즉시 조사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인종관계연구소 등 인권단체들은 자칫 이번 일이 흑백 간 갈등을 더 심화시켜 폭력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며 우려했습니다.
2010년 월드컵을 앞둔 남아공은 극심한 빈부격차와 치안 불안에 더해 흑백 갈등이라는 해묵은 문제와도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AFP통신은 "다인종 국가로서 `무지개 나라'를 모토로 내세웠던 남아공의 인종 통합이 허상에 불과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전했습니다.

재작년에 남아공을 잠시 방문했을 때 케이프타운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은, 요하네스버그에서 숨막힐듯 답답했던 탓(치안이 너무 안 좋아서 밖을 나다닐 수가 없었어요)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거기가 '차별적인' 나라라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편갈라서 이쪽 길로 이 사람들, 저쪽 동네엔 저 사람들 식으로 나뉘어 있는 곳에서 살긴 싫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거죠. 아이 영어 가르치고 좋은 환경에서 교육시키기 위해 케이프타운으로 가시는 한국 분들 많은데 저도 가끔씩 거기 가시는 분들 너무 부럽고 그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공처럼 갈라진 곳에서 어찌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살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거죠.
좀 전에 라디오에서 이 뉴스 리포트했더니 아나운서가 마지막 코멘트로 "정신이 나갔군요." 라 하네요. 과격한 아나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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