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딸기의 하루하루

내 가방 속의 천사들

딸기21 2002. 11. 28. 21:54
728x90
<내 책상 속의 천사들>이란 영화를 재밌게 봤었다. 그 뒤로 나는 가끔 책상과 가방을 뒤지며, 그 속의 천사를 찾는다. 어제는 모처럼 휴가를 내서 하루 쉬었는데 그 사이 가방 안에 천사가 들어왔다. 이제, 천사들의 합창 시작-.

stabilo 포인트88 펜.
몸통은 주황색, 잉크는 회색. 책에 줄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장만했다. 회사 서무에게 펜을 달라고 하면 플러스펜을 주는데, 값이 싼 대신 쓰는 느낌이 안 좋고 오래오래 쓸 수가 없어서(너무 빨리 마르고, 펜촉도 잘 닳는다) 안 좋아한다. 그렇다고 내가 펜을 돈 주고 사는 일은 통 없지만 그제 문구점에서 구경을 하다가 큰맘먹고 새 펜을 샀다.

어느 해였던가, 교육방송의 강사가 '밑줄 쫙, 별표 하나' 식의 강연으로 인기를 얻었던 적 있었지.
얼마전 회사의 몇분과 커피를 마시면서 책 읽는 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들마다 줄을 치는 부분이 다르다"는 데에서 시작됐는데, 함께 했던 사람들 중 삐삐라는 분과 나는 책에 줄을 치는 것은 물론, 아예 자를 대고 밑줄을 긋는 버릇이 있다.
"제가 아는 사람은 번역본의 원전과 비교해서 빠진 부분을 복사까지 해서 책에 끼워붙여요"(아술리다-약간 경멸적인 어투로) "나도 그러는데. 모르는 거 나오면 인터넷에서 찾아 프린터해서 책에 끼워놓고, 책장에 글 적고 가끔은 계산까지 하는데."(딸기) "아니 그런데 책에 자를 대고 줄을 친단 말야? 비교적 나와 code가 맞는 편이라고 생각했던 두 사람이 그런 짓을 하다니!"(쿨리-분노하며)
공부하라 하면 괜히 책상 정리하고 연필 깎고 하는 사람들 있잖아. 고등학교 때 교과서나 참고서에 색색깔 형광펜으로 장식하면서 공부하는 애들. 꼭 공부 못 하는 애들이 그런 짓 한다는, 그런 얘기인데, 쿨리님의 논리는 비교적 정연한 외피를 갖추고 있다. 모든 텍스트에는 나름의 완결성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밑줄 쫙- 그것도 자 대고 반듯하게 그으면 텍스트의 아우라같은 것이 다 사라진다는.
나의 변명은 이렇다. 색색깔 형광펜 같은 건 쓰지 않으며, 단지 책을 빨리 읽기 위해 줄을 친다는 것. 나의 책 읽는 속도는 갈수록 느려져서, 책 한권 떼는데 3-4주 걸리는 건 '기본'이다. 그런데 줄을 치면서 읽으면 그나마 조금 속도가 빨라진다고 할까. 자 대고 그으면 가속도가 붙어 더 빨라진단 말이다. 믿거나 말거나.

올림푸스 C-730 디지털 카메라.
올초에 TV 홈쇼핑을 이용해서 코닥 디카를 샀었다. 그 동안 올린 꼼꼼이 사진들이 그걸로 찍은 거였는데, 이 카메라는 값이 싼 대신에 사실 좋지 않았다. 그래도 돈 들여 산 것이니 계속 쓰려고 했는데, 우리 오빠가 더 좋은 디카를 장만한 이후로 아지님이 부쩍 집의 디카에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 급기야 지난주 일본 출장에서 올림푸스 디카를 사왔다.
몇분 정도 비디오 녹화도 할 수 있고, 플래쉬 없이도 어두운 곳에서 제법 이쁜 색감을 낼 수 있다. 앞으로는 늘 디카를 갖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을 생각이다.

영국 유학중인 친구가 서울에 온 기념으로 대학 동기 네명이 만나 저녁을 먹고 차를 마셨다. 카페에서 사진을 한장씩 찍었는데,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카메라 꺼내니 다들 겁부터 낸다. 우린 언제부터 이렇게 얼굴에 자신이 없어졌지? 원래도 미인은 아니었잖아 :) 그런데 새삼, 스스로 늙고(?) 후줄근해 보인다는 생각들을 하게 된 걸까.

내 눈에는 초록색인데 가게 아줌마는 카키색이라고 우겼던, 가죽지갑.
비충동적 충동구매. 계속 작은 지갑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어제 교보문고 가판대에서 <불현듯> 구입함.
지갑 안에 카드가 너무 많다. 정작 신용카드는 한장 뿐인데 여러 상점에서 받은 포인트 카드, 요즘 넘쳐나는 테이크아웃 커피점의 쿠폰 겸용 카드, 백화점 카드 따위를 합치면 두께가 1cm는 되는 것 같다. 게다가 아파트 들어갈 때 쓰는 검문검색용 카드, OK 캐쉬백 카드, 미장원 카드까지-.

무슨 카드가 그렇게 많니.
응, 요샌 커피 한잔 마셔도 카드 하나씩 생기잖아.
난 그런 거 받아서 집에 놔두고 한번도 못 쓰는데.
난 아냐, 어떻게 해서든 챙겨서 공짜 커피 마셔.
난 두번째 부류의 사람이다. 뭐든 남이 주는 거 있으면 엄청 잘 챙긴다. 생긴 것과 똑같게 알뜰하다고 할까. 늘 자랑하지만, 수건 비누 세제 화장지 냅킨 등등 잡다한 생필품들을 돈 주고 산 적이 거의 없다. 백화점에서 주는 사은품 다 받아오고, 아파트단지 입구의 주유소에 걸린 현수막을 눈여겨 보아뒀다가 치약이나 휴지 따위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쿠폰으로 받아온다. 회사 근처 할리스 커피점에 갈 때에는 쿠폰에 도장 꾹꾹 눌러받고 각종 포인트 기본으로 챙긴다.
며칠전 후배가 내게 직장 야구부에 들라고 했다. 매달 2000원씩 내면 1년에 점퍼 한 개씩은 생긴다고. 실은 입사 2년차 시절 회사 탁구대회에 나간 적 있다. 나가기만 하면 수건 한 개씩 준다고 해서. 실력있는 여자 선배에게 걸려 1차 탈락했지만 목표했던 수건은 받아냈다.
어쩌면 난 대머리가 될지도 몰라. 대학시절 친구들과 야구장에 갔다가 경품으로 조그만 가방 같은 것을 탄 적 있다. 회사의 부부동반 모임에 두 차례 나가서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 2인 뷔페권과 현대백화점 10만원 상품권을 탔었고, 심지어는 가위바위보까지 잘 해서 케이크와 인형 따위를 받아다가 사람들에게 나눠줬었다.
그런데 왜 돈 주고 산 것들은 그렇게 잘 잃어버리는 것일까. "인간아, 도둑이 아무 거나 훔쳐가냐. 니 같이 어리버리한 사람 것만 훔쳐가지." 몇해전 함께 일했던 선배에게 이런 면박도 받았었다. 그렇지만 난 지금도, 도둑이 나빴지 내가 나빴다고는 생각 안 한다.

다이어리.
각종 리스트 만들기에 목숨거는 주제에, 정작 다이어리는 잘 안 썼다. 국민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나는 일기를 아주 열심히, 꾸준히 썼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버릇이 없어지더니 요사이는 생활의 기록 따위는 아예 사라졌다.
가방 속의 다이어리는 재작년에 후배에게 선물받은 것. 난 다이어리 한권에 몇만원씩 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쓰지 않고 있다가 며칠 전 책더미 사이에서 발견, 새 마음 새출발 하려고 꽃무늬 속지까지 새로 끼워넣었다.

다이어리 첫 장을 열면 우리 꼼꼼이 2개월 때 사진. 다음 장에 99년에 남편과 찍은 스티커사진-다소 엽기적인 분위기. 그리고 후배에게서 받은 LG트윈스 스티커. 본격적인 다이어리가 시작되는 첫 페이지에는 이번 주 축구경기 중계표. 챔피언스리그 16강 경기가 시작됐다. 모두 절대 놓칠 수 없는 경기들이다.
그 다음장에는 꼼꼼이에게 오가는 기차 시간표. 뒤편에는 빽빽하게 오려다 붙인 전화번호부, 맨 뒤에는 지갑형 봉투 안에 들어있는 스티커들. 마치 내가 스티커를 아주 좋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만화 주인공 얼굴들이 들어있는 스티커인데 누가 공짜로 줘서 넣어놓고 있고 있었던 것 뿐. 100원짜리 동전도 한 개 들어있다. 앞으로 10년 동안 계속 넣어놔야지.

추초 발데스와 치프턴스의 CD.
추초 발데스, INVITACION. 치프턴스, The Long Black Veil.
좋아하는 두 부류의 음악.

지난번 한국-브라질 평가전 보러 함께 갔던 친구 N군(5월 내 생일에 치프턴스 CD를 선물했던 인물)이 치프턴스의 또다른 음반을 사주었다. 니가 준 치프턴스 음반 되게 좋더라, 라고 말했더니 자기도 한 장 사서 듣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자기 것 사면서 내 것까지 같이 샀단다. 교보에서 N군을 기다리면서 나도 답례로 줄 씨디를 샀다. 추초 발데스의 씨디를 두 장 사서 한 장은 그에게 주고, 한 장은 내가 가졌다.
아무래도 나는 할아버지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모양이다(음악가 구분). 혹은 전통음악을 좋아하든가, 민요를 좋아하든가(장르적 구분). 굳이 음악적 구분을 말하자면, <리듬감이 강한> 것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지. 얼마전 구입한 <러프 가이드 투 쿠반 뮤직 스토리>까지, 아프로쿠반 음악과 켈틱음악 라이브러리가 두둑해졌다.
그런데 황당한 건, N군에게서 받은 치프턴스 씨디에 들어있는 설명서. 열심히 읽고 나니 치프턴스의 과거 음반인 <켈틱 셀러브레이션>에 대한 설명이었다. 뭐야, 이거. 음반이 다르지 않냐고...국내에서 음반 만들면서 이런 식으로 끼워넣은 모양인데, 이러면 어떡하냐고...배신이야, 배신.
728x90

'이런 얘기 저런 얘기 > 딸기의 하루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촛불시위  (0) 2002.12.16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0) 2002.12.02
꿈꾸는 것은 나의 자유  (0) 2002.11.13
평상심  (0) 2002.10.24
옛날 떡볶이.  (0) 2002.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