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버마 민주화 운동가 인터뷰

딸기21 2007. 9. 28.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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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사독재정권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와 유혈진압 사태가 연일 외신들을 달구고 있다. 양곤에서 들려오는 민주화 바람과 유혈사태 소식을 누구보다 가슴졸이며 긴장감과 기대감 속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한국에도 있다. 


1988년 군정 지도자 탄슈웨가 이끄는 쿠데타 정권이 집권한 뒤 미얀마를 탈출해 한국까지 오게 된 미얀마 민주화운동가들이 그들이다. 한국 정부에 망명 신청을 내놓고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본국과 힘겹게 연락해가며 양곤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고 있는 마웅저(38)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마웅저씨는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 학생조직에서 활동했던 학생운동가 출신으로 1994년 보안당국의 추적을 피해 한국으로 왔다. 현재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 반상근 간사로 일하면서 고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고 있다. 


미얀마 유혈사태가 전해진 27일 서울 종로에서 마웅저씨를 만나 미얀마 망명자 네트워크를 통해 전해진 현지 움직임과 실태 등을 들어봤다. 그는 군정이 만들어낸 `미얀마'라는 국명 대신 `버마'라는 이름을 고집하고 있다.



-양곤을 떠난지 오래됐는데 현지와의 연락은 어떻게 하고 있나.

"지금 버마에는 언론이 없다. 모든 미디어는 국가의 통제를 받으며, 주요 방송과 신문 모두 군정에 의해 움직인다. 민주화 운동 세력은 주로 태국, 일본, 노르웨이, 미국 등지의 망명자 네트워크와 미디어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는다. 인터넷 신문과 방송이 망명자들을 이어주는 통로다. 버마 내 활동가들도 힘들게나마 당국의 추적을 피해가며 인터넷으로 연락을 하고 있다."

-시위대의 구체적인 요구는 무엇인가.

"현재 시위대를 이끌고 있는 불교계가 내세운 것은 기름값 인상 등으로 촉발된 경제문제 해결, 8월부터 시작된 시위 진압 과정에서 일어난 경찰의 승려 폭행에 대한 사과, 이번 시위 사태 전후 체포된 이들의 석방, 군사정권이 야당 지도자들과의 대화에 나설 것 등 4가지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군사정권을 퇴진시키고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것이지만 아직은 군정 퇴진까지 요구하는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유혈사태가 지속된다면 군정 지도자들의 퇴진 요구가 거세질 것이며, 정권교체까지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승려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데, 버마 민주화 운동에서 불교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버마 불교에서 저항의 전통은 1930∼40년대 반영(反英) 독립운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88년8월 일어났던 이른바 `88항쟁' 때에도 스님들이 대거 참여했었다. 우리는 스님들을 파이야 따도(부처의 아들)이라 부를 정도로 존중한다. 몇몇 승려들이 군정에 의해 급조된 불교조직에 참여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의 승려들은 군정의 자금 지원 등 회유조치를 거부하고 저항을 벌이고 있다. 버마 내 정치범 1400여명 중에도 승려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군정은 세이야 러지(큰스님)들을 사실상 연금시킨 채 외부 접촉을 차단하는 등 영향력을 줄이려 애쓰고 있다."

-양곤의 시위는 기름값 인상을 철회하라는 것에서 "자유를 달라"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들었다. 양곤의 정치적 상황은 어떤가.


"버마는 법도 국가질서도 없는 사회다. 국가에 고용된 강패들이 판치고, 법은 정의와 질서를 지켜주지 않는다. 10집 중 1집은 이웃 동향을 군정에 보고해야하는 감시제도가 있으며 밤이든 새벽이든 아무 때나 보안대가 들이닥친다. 아버지 집에 가서 하룻밤 묵는 것도 보안대 허락 없이는 안된다. 경제는 완전히 무너졌다. 교사 월급이 3만원 정도인데, 달걀값은 한국과 비슷하다. 휴대전화 한대에 300만원씩 한다. 군정이 시장 문을 걸어닫고 수입을 통제하며 국민들 상대로 장사를 하기 때문이다. 공식 환율은 달러당 6.5짝(미얀마 화폐단위)이지만 암시장에선 1달러가 1200짝에 팔린다. 한 끼를 해결하기도 힘든 지방 빈민들은 절에서 밥을 얻어먹는다. 스님들이 공양을 받아 빈민들을 나눠주는 상황이니, 시위가 일어나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중국의 영향력은 얼마나 큰가.


"버마와 중국의 관계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와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 버마는 곧 중국으로 넘어간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버마의 역사적, 문화적 중심지이자 제2의 도시인 만달레이는 화교들에 장악됐다고 들었다. 지금 중국은 군정과 동맹을 맺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1990년5월 총선거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의 NLD가 승리하자 가장 먼저 축하인사를 보낸 것이 중국 대사관이었다. 국제사회가 중국을 압박하면 중국도 태도를 바꿀 것이다."

-국제사회의 제재 조치로 국민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버마 야당들과 운동단체들은 군정의 탄압에 맞서 계속해서 유엔의 개입을 요청해왔다.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게 된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경제제재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국제사회의 개입을 원하지만, 군정과 야당 정치인들 간 대화의 자리를 만들어달라는 것이지 버마를 공격하라는 뜻은 아니다."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수치 여사와 NLD가 집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나.


"그렇게 돼야 한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 과정을 통해서도 알수 있겠지만, 민주화 운동 진영이 집권한 뒤에도 여러가지 문제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군정을 몰아내지 않으면 버마는 달라질 수 없다. 버마 역사에서는 굵직한 쿠데타들 사이에도 수차례 `미니 쿠데타'들이 있어왔다. 탄슈웨가 됐건 그 전의 군정 지도자들이 됐건, 쿠데타 정권의 `얼굴'만 바뀌는 것은 의미가 없다. 갑자기 군정이 무너지면 내전이 날 우려도 있다. 버마는 해방 이후 과거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사회갈등이 그대로 축적, 온존돼 있다. 버마군 45만명 중 사병들은 대부분 친족, 카렌족, 몽족 같은 소수민족 출신이다. 버마 내 소수민족 무장투쟁 단체만 17개에 이른다. 민주화 운동 이후의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다. 그래도 미래를 고민하면서 싸움을 해나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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